“그러니까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건가?”
차가운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울려퍼졌다.
햇빛이 거의 들지않는 골목의 가장 깊숙한 곳
하위층을 지배하는 조직의 본거지였다.
“아니면 그런 간단한걸 실패할리가 없지 않은가”
쾅!
분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을 세게 한번 치자
그제야 눈치를 보던 셋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저,정말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맞아요..그냥 장난이었을뿐이었는데..실패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왕좌처럼 커다란 의자에 앉아있었던 그녀가 일어났다.
“우리 구역에 들어온 애들이라면, 살아 돌아갈수없다는
본보기로 삼기 안성맞춤일테니..”
또각 또각 또각
대리석 바닥에 울리는 구두소리가 그들의 앞에서 멈춰섰다.
“이번에는 실망 안 시킬거라고 믿네 공룡 덕개 그리고 수현”
그녀의 말에 맨 오른쪽의 한 사람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수현 왜 그러는거지? 할말이라도 있나?”
“..네 그놈들은 강합니다. 저희가 생각한것보다도 말입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보스도 아시잖습니까. 제가 장난은 칠 망정
그 도중 실패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는걸”
공룡도 억울함을 토로하는듯 말에 끼어들었다.
“물론..장난이 지나치긴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원래 오던 떨거지들이었으면 이미 죽었어야했다고요”
덕개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결백을 주장했다.
그들의 보고를 받으며 잠뜰의 눈은 다시 반짝였다.
“그래..강하던 말이지? 마음이 바뀌었어”
다시 구두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번에는 방의 입구쪽으로.
“다들 뭐하나? 침입자들 죽이러 가야지”
잠뜰이 나가며 그들에게 말하자
셋 모두가 그 방향으로 뛰어나갔다.
“..저 셋도 물리치지 못했다면..그놈들인가”
그녀는 중얼거리며 허리춤에 꽂아둔 권총을 꺼냈다.
이윽고 넷은 복잡한 건물 사이사이를 오가며
어두운 뒷골목으로 향했다.
고위층에서 내려온 공중부양 장치도
드디어 쓸모가 있는 순간이었다.
탕!
먼저 들려온 총알은 확실히 반대쪽이었다.
넷은 가운데로 날아간 총알을 피하느라 반으로 갈라졌고
그 과정에 넘어질뻔한 덕개는 겨우겨우 균형을 잡았다.
“으에? 아직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총을 쏜다고요?”
덕개가 어이없다는듯 말하자 잠뜰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나름의 선전포고 아니면 도발이라 봐야지?”
탕!
아까보다 훨씬 큰 총소리가 울렸다.
물론 이번에는 반대쪽이 아니었지만.
잠뜰의 총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상대편쪽에서는 당황한듯한 외침이 연달아 들렸다.
“음 전투원은 한명 비전투원 한명으로 보입니다”
고글을 쓰고있던 수현이
더 높은곳으로 올라가 상황을 살폈다.
“우리를 저격하는건 지금 현재 저격용 기관총을 든
빨간머리, 그리고 저 멀리 무언가를 조작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어..?”
한창 살펴보던 수현은 갑자기 고글을 벗었다.
“뭐야..왜 오류가..”
“설마 그거 하나 관리를 못하는거야?
이리 내고 내거나 쓰라고”
공룡이 자신의 고글을 자신있게 내밀었지만
그것또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계속 오류도 뜨고..이젠 진짜 못 쓰겠는데요 보스”
수현이 그녀를 돌아보자 잠뜰은 익숙하다는듯
이미 공중부양 장치에서 내리고있었다.
“조용히하고 내려오기나 해. 추락하기 싫으면”
정말 어떻게 예견했는지 그들 넷 모두가 안전하게
땅으로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아
공중부양장치 세개는 작동 정지 후 추락을,
나머지 하나는 폭발이 일어나버렸다.
“..”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이게 가능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몇번이고 시도했던게 바로
고위층 물건 해킹이나 파괴였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수현과 공룡 덕개는 일시에 눈빛을 교환했다.
분명 우리 조직에 도움이 될것이다
하지만 적이 된다면..
그 자리에서 얼마나 피해를 내더라도 죽인다.
세계관은 대충 하위층과 고위층 그리고 그 중간에 끼인
중간층으로 이루어진다. 하위층은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땅 위에 세워진 높은 건물이나 그 사이 골목에
고위층은 하늘을 덮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섬 일명 천국에
그리고 중간층은 천국 아래에 작은 집들을 붙여 연명한다.
고위층은 뛰어난 인재들이 많으며 과학기술도 매우
발전해있다. 반면에 하위층은
지금의 과학기술과 비슷비슷하며 가끔 선거기간때
공중부양 장치와 같은 비싼 장비들을 뿌리기도 한다.
중간층은 고위층으로 많이 숨어들어가기때문에
고위층 과학기술과 똑같다. 이에 고위층 해킹은
고위층에서도 완전 뛰어난 해커 혹은 중간층에서
잘 주워들은 천재만이 가능하다고 알려진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당연히 천국에서 스카우트하며
하위층에서 이런 싸움을 하고있을 시간조차 없다